月刊 아이러브 PC방 8월호(통권 39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병X 보존의 법칙’이란 시쳇말은 어떤 그룹이든 꼭 일정 비율로 못난 사람이 섞여 있다는 의미다. 그 비중이 열에 한 명이라면, 100명 중 10명은 못난이라고 보면 얼추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9명이 생선을 좋아하면 1명은 꼭 고기만 먹고, 9명이 친절하면 한 명은 평균을 맞추려는 듯 무례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PC방 커뮤니티를 훑어보다 보면 ‘진상’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업주보다는 고객 쪽에서 주로 등장한다는 소위 ‘진상 손님(이하 진상)’은 손님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는 달나라에 던져놓은 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손님의 ‘님’ 대신 ‘놈’으로 바꾸는 부류다.

한가지 섣불리 손가락질하면 안 되는 부분은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다. 자칫 핑계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진짜로 이용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PC방 고객이 좌석에서 큰 소리로 직원을 부르는 행위를 예로 들면, 나이가 적지 않거나 PC방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진상이라기보다는 현재의 PC방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이 원인이니 업주로서는 일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제는 상술한 부분을 제외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언행으로 업주는 물론 다른 고객들까지 불쾌하게 만드는 진짜 진상이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의 ‘식객’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는 고수가 많다. 자기가 고수인지도 모르는 진짜 고수!” 진상은 실상을 일깨워주지 않으면 자기가 진상인지 모른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높은 확률로 진짜다.

기자가 2001년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같은 손님을 당시의 사장님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리니지’를 즐겨 하던 40~50대 남자 손님이었는데, 반말에 욕설은 기본으로 탑재하고 무리한 부탁이나 담배심부름, 비위생적 행위까지…, 진상 중에서도 아주 초진상이었다.

하지만 사장님에게 그 사람은 PC방 매출의 일부를 책임져주는 단골손님이었다. 그 이상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이하도 분명 아니었다. 씻지도 않고 이틀째 같은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면 얼굴이 찌푸려지기보다 오히려 화색이 돌면서 내게 ‘서비스로 커피 한 캔 갖다드려라’ 할 정도였으니까.

이쯤 되면 어렴풋이 진상의 진상(眞相)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스무 살 당시의 나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어리숙했고, 그 진상은 직원을 자기 맘대로 휘두르면서도 사장에겐 자신의 입지를 어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약자에게는 강하지만 강자에게는 약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진상에 대한 대처법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스탠스만을 고수하는 것은 곤란하다. 전후 사정이 어쨌든 진상도 손님이고 매장의 매출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거울치료처럼 똑같이 무례하게 대응하는 것은 시원할 순 있겠으나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진상도 ‘쪼렙’과 ‘만렙’이 있다. 최근 몇 개월간의 PC방 이용을 통한 경험적 판단으로 보건대, 진상에는 별다른 스킬 없이도 대처할 수 있는 ‘쪼렙’, 그리고 업력 십수 년의 베테랑이 아니면 쉽사리 제압하기 어려운 ‘만렙’이 있다. 많은 사장님들이 언급하는 외부음식 반입은 쪼렙 중에서도 무난한 수준이지만,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온 성인이 다 같이 흡연실에서 담배를 물면 상당한 고렙이다. 또 PC방에 1년 가까이 다니면서 매번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만렙이다. 그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문제는 쪼렙이든 만렙이든 이 진상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다. 제목처럼 두 가지로 구분하고 해당 고객을 다시는 받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면 격렬하게, 그렇지 않고 진상마저 고객으로 둔갑시킬 자신이 있다면 현명하게 대처하면 된다. 다만 두 방법 모두 강제성을 띨 수는 없기 때문에 그 효과나 성공 확률은 예측하기 어렵다.

진상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이미 많은 매장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외부음식 반입을 예로 들면, PC의 로그인 화면을 비롯해 매장 곳곳에 외부에서 구입한 음식은 PC방 내에서 취식할 수 없다고 공지하고, 동시에 외부음식 취식 적발 시 사용시간 차감, 출입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명한 방법을 추천하고 싶지만, 상술했듯 진상에도 피하는 게 상책인 만렙이 있다. 개선의 여지가 없고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고객이라 하더라도 손님으로서 대우해줄 필요는 없다. 회원 아이디를 파악해 로그인 및 재가입을 차단하고, 충전된 시간은 환불해주면 된다. 간혹 그런 일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마저 떠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설 수 있지만, 손님 입장에서 진상이 가게를 떠나는 것은 오히려 안심하고 그 PC방을 찾게 하는 이유가 된다.

‘손님은 왕’이란 말은 이미 시대착오적 개념이 된 지 오래다. 진상도 손님이니 어쩔 수 없다는 대응은 업주뿐 아니라 다른 손님에게도 줄 수 있는 피해를 묵과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고객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진상 고객은 ‘손님’의 범주에서 과감하게 배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손님은 왕’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중은 블랙 컨슈머에 대한 응징을 시원한 ‘사이다’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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