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9월호(통권 39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피씨나인 숙명여대점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말 재밌는 PC방이다. PC방에 도입되고 있는 다채로운 아이템들의 동향과 그 최전선을 살펴볼 수 있어서다. 피씨나인이 손에 든 아이템은 고기다. PC방에서 먹거리 매출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통구이 바비큐의 등장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매장 입구를 장식하는 입간판에 당당하게 새겨진 ‘바베큐 삼겹’이라는 문구에서 고기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서도 ‘통구이 PC방’은 이미 유명세를 탔다. 독특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피씨나인 숙명여대점 속으로 들어가보자.

대학생들의 생활밀착형 업소
피씨나인은 전형적인 대학교 상권 매장으로, 숙명여대 정문 근방에 자리 잡고 있다. 166제곱미터(50평) 규모에 PC 대수는 65대인 중소형 매장이다. 요금은 1시간 30분에 2,000원으로 평범하다. 주요 손님들 역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들과 인근에 거주하는 1인 가구들이 대부분인 것도 여느 대학교 상권 PC방들과 동일하다.

PC 사양을 살펴보면 CPU i5-7500에 그래픽카드는 지포스 GTX1060으로, 냉정히 평가하면 평균 이하다. 게이밍 기어 역시 키보드는 앱코, 마우스는 로지텍 G102로 눈에 띄는 특이점은 없다.

피씨나인 숙대점 전우진 사장은 “이렇게 장사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우리 매장을 찾아오시는 손님들 중에는 고사양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이 없다. 남자 손님들은 ‘리그오브레전드’, 여자 손님들은 ‘오버워치2’가 인기인데, 두 게임 모두 사양을 타는 게임이 아니다. 손님들의 요청이라도 있으면 업그레이드를 고민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주기적 또는 관성적으로 불필요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전 사장은 자신이 PC에 대한 관심이나 소양이 PC방 사장님들 평균보다 떨어진다고 자평하면서도 PC 사양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다시금 본래 궤도에 올려놓고 있는 시기라 고가의 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그저 손님들의 선호 게임과 요청에 반응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수요일 오전 11시에 찾아간 매장은 아직 가을학기가 시작되지 않은 대학 상권 비수기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여대 앞 PC방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장식하고 있는 분홍색 헤드셋들이 민망하게도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손님 8명 중 절반은 ‘던전앤파이터’를 플레이하고 있었고, 나머지 손님들도 고사양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웹서핑을 하거나 OTT를 통해 영화를 시청하는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PC를 모르지 고기를 모르나?”
피씨나인 입구에 들어서면 기존 PC방들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정육점 냉장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붉은빛 조명이 강렬한 인상의 인테리어 소품처럼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전 사장은 전문 고깃집에서나 사용하는 육류 숙성 전용 냉장고라고 소개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고기 숙성의 방식과 진공 포장,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자체 개발한 연육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PC 사양에 대해 말할 때는 심드렁한 표정이었지만 고기 차례가 되니 눈에서 빛을 내뿜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줄곧 고깃집에서 일한 그다.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 고깃집에서 13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고. 피씨나인 숙대점 전우진 사장의 정체는 고기 전문가였다. 이런 그의 이력은 좀전의 눈빛 변화를 단번에 이해케 했다.

고기 전문가가 어쩌다 PC방 사장님이 됐을까? 매장 인수를 통해 PC방 사장 3년 차라는 그는 악운도 이런 악운이 없을 것이라 한탄한다. PC방 사장의 경험 전체가 통째로 코로나이기 때문이다. PC방 사장으로서 이번 여름이 코로나가 아닌 시기를 처음 경험하고 있다고….

그러나 전 사장의 PC방 인생이 3년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한 나만의 식당이 망해버렸고, 그런 그가 발을 담근 곳이 PC방이다. PC방 전문 업체에 입사해 알바생부터 매니저, 점장까지 6년 동안 PC방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삶을 가꿔나갔다.

그리고 3년 전 회사의 권유로 퇴사와 함께 관리 상권의 매장 하나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그 매장이 바로 피씨나인이다. 매장을 인수하고 나니 어처구니 없게도 코로나가 터졌고, 그동안의 PC방 경험에서 가장 끔찍한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고기를 전면에 내세운 피씨나인의 새 출발도 어떻게 보면 코로나 때문이다. 고기는 나만의 차별화 아이템이었다. 그동안의 PC방 동향을 돌이켜봤을 때 매장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고기와 PC방은 궁합이 꽤 좋아 보였다.

전 사장은 “매장이 생겼고 의욕이 불탔는데 전대미문의 상황들이 매일 같이 벌어졌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며 “고기를 다룰 수 있는 나만의 능력을 살려서 뭐라도 해볼 요량으로 고기를 선택했고, 어쩔 수 없이 배달도 하게 됐다”고 전했다.

PC방과 고기의 콜라보레이션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배달은 접었다. 매장의 역량이 과도하게 배달에 투입되면서 PC방이 챙겨야 할 기본적인 부분들에 소홀해진다는 판단에서다. 차라리 고기의 퀄리티와 서비스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오늘도 전 사장은 고기에 대한 미학을 바탕으로 직접 발품을 팔면서 좋은 고기를 확보하고 초벌하고 있다.

그가 취급하는 돼지 품종은 스페인산 듀록이다. 듀록은 미국 뉴저지가 원산인 품종으로,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사육이 늘고 있다. 듀록은 고기 색이 진하며 근내지방이 많이 함유돼 있어 마블링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육질도 부드러워 일반 돼지보다 감칠맛이 뛰어나 최근에는 듀록과 이베리코가 전문 돼지고깃집에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다.

취급하는 부위는 삼겹과 목살이다. 단품은 7,500원, 세트는 1만2,500원의 메뉴로 완성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돼지고기 메뉴를 주문하지 않은 고객들도 시험 삼아 추가할 수 있도록 토핑 메뉴로 등록했다.

고기에 진심인 전 사장은 게임이나 PC 사양보다 위생과 청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더욱이 여학생들이 많이 찾는 매장이라 화장실 청소, 날벌레를 없애는 포충, 불쾌한 냄새를 잡는 제취에는 눈에 불을 켠다.

전문 살충 업체를 통해 매장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으며, 향균·방향·디퓨저 및 청소 용품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식품위생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알바생들의 교육을 철두철미하게 실시하고 있다.

한편, 오전 4시부터 9시까지는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 시간대에는 상품을 판매하진 않는다. 평균적인 무인매장들보다 더 늦게 닫고 더 늦게 여는 셈인데, 그래도 새벽 4시까지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고기와 PC방의 시너지가 나타난다. 게이머 손님 외에도 OTT를 통해 영화 및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이런 손님들은 이용시간이 길어서 야식을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장의 시그니처인 고퀄리티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인 셈이다.

매장을 나가면서 고기만 따로 구입해 포장해가시는 손님들도 있고, PC방 손님이 아니라 정육점처럼 고기만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매출 비율만 놓고 보면 PC 수익은 35% 정도에 불과하고, 음식이 65%에 달한다.

PC방은 유연한 업종이다!
일반적인 고깃집에 버금가는 업무에 PC방의 기본적인 업무까지 더해진 매장이다 보니 알바생들의 근로는 고될 수밖에 없다. 전 사장은 이런 노고를 잘 알기에 그만큼 임금을 더 챙겨주려고 한다. 매년 오르기만 한 최저임금보다 훨씬 더 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부담도 적지 않다.

전우진 사장은 “내년에는 정통 고깃집을 오픈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목표가 있으니 열심히 일하게 된다. PC방은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최근 통구이 바비큐 PC방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앞으로도 피씨나인은 내가 꿈꾸는 PC방으로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PC방에서 쓸데없는 짓 한다거나 알바만 고생시킨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상관없다. 내 생각에 PC방은 상상 그 이상의 다양한 아이템들과 접목이 가능한 유연한 업종이다. 업주의 관심과 재능이 있다면 기존의 틀에 갇히지 말고 지평을 넓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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